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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디어 에스더에 대한 잡담

 네가 태어났을 때 분만실에는 적막이 가득했다고 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어. 커다랗고 붉은 모반이 네 얼굴 왼편을 덮고 있었지. 아무도 말을 잇지 못하자 네가 울음으로 적막을 메워주었지. 언제나 감탄하는 부분이야.

 어떤 공백이라도 울음으로 채워주는 그것 말이야. 네가 너의 재능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나는 공백을 만들기 시작했어. 여섯 살이 되자 모반은 희미해졌고, 우리가 만났을 때쯤에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공백과 그 해결법에 대한 흥미는 남아 있었지.



스포일러 주의!





1.

원래는 P.T.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으나 플4를 가지고 있는 친구랑 시간이 안 맞아서 못하게 됐다. 어차피 그 글에서도 디어 에스더를 언급하고 가려고 했기 때문에 클리어를 하긴 해야 했다.디어 에스더는 원래 전에 한번 깨보려고 했으나, 중간에 이야기를 놓쳐서 나중에 다시 해야지 하고는 거의 1년 동안 하지 않았다. 내 라이브러리에 있는 디어 에스더를 볼 때마다 밀린 숙제처럼 찜찜함을 느꼈으나 그때처럼 이야기를 제대로 못 따라가고 놓칠까봐 무서워서 건들지 못했다. 하지만 그냥 했고 어찌해서 엔딩을 보긴했다. 많은 의문점만 남았지만 말이다.


2.

화자는 에스더와 연인 사이로 추정된다.(부부일 수도 있는데 적어도 둘 사이에는 아이는 없어 보인다.) 에스더는 폴이라는 사람이 모는 차에 치여 죽게 된다. 사고 후에 화자는 폴을 만나지만  역시나 좋은 만남은 아닌 듯 싶다. 이유는 불명이지만 폴은 죽게 되고, 화자는 도서관에서 도넬리라는 사람의 책을 읽게 된다. 그리고 그 책의 무대인 헤브리디스 제도에 오게 되면서 ‘어떠한 형태의 재탄생’을 준비한다.


3.

화자의 독백은 2개의 트랙으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에스더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도넬리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에스더의 이야기는 현대의 이야기로 에스더의 사고와 폴의 죽음, 화자가 섬에서 한 행동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도넬리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로 순수한 고독을 추구하던 은둔자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쓰러 이 섬에 온 도넬리, 그리고 그 섬에 살던 목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둘의 이야기는 각자 따로 존재하는 듯 싶다가 에스더의 풀네임이 에스더 도넬리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두 트랙은 하나로 합쳐진다.


4.

이 게임의 텍스트는 게임 내 텍스트끼리 서로를 참고하거나 외부적으로는 성경까지 끌어들이기 때문에 이해하는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리고 이 글도 게임의 텍스트를 많이 인용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도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도넬리는 은둔자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이 섬에 왔다. 그[각주:1]는 그 섬에 사는 목자들을 신에게 버림받은, 바위에 붙은 따개비 같은 존재로 느꼈다. 하지만 그 자신도 신에게 버림 받았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듯 싶다. 그는 바위에 집착했는데 바위는 ‘만의 절벽을 지키는 조심스러운 펜스’이며 ‘우리가 바다로, 무의식속으로 빠지지 않도록 해주는 존재’이다. 하지만 바위는 하얀 석회로 선을 그어 섬 밖에 신호를 보내기도 하는 겉 표면이기도 하다.

그는 결국 말년에 믿음을 잃고 섬을 떠난 후에 죽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폴 제이콥슨에 대해서 이야기한, 제이콥슨을 알아주는 존재이다. 폴은 에스더 도넬리를 치었다. 과연 에스더를 기억해줄 사람은 있을까?(이 부분은 나의 비약이다.) 화자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도넬리를 위해서 섬에 기록을 남겨두었다.


5.

아까도 말했듯이 이 게임은 자기 인용을 많이 한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반복되는 말이 자주 나온다. 성자는 바닥이 없는 배를 타고 이 섬에 온다. 그는 바닥이 없는 배 때문에 밤마다 물고기와 이야기를 하며 여기에 올 수 있었지만 그가 순수한 형태의 고독을 추구하는 성자였기에 결코 달가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화자는 ‘보트 밑엔 구멍이 있는 게 분명해. 그게 아니면 어떻게 새로운 은둔자가 도착할 수 있었겠어?’라는 말로 본인을 성자와 동일시 하기도 한다. 에스더는 바닥 없는 해치백을 탔고, 바닥이 없는 종이배를 타고 달로 가기로 하고, 바닥이 없는 섬처럼 바다에서 떠올라 송신탑이 되었다. ‘바닥이 없는’ 이란 표현이 뭘 의미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 표현이 성경같은 외부 텍스트에서 온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바닥이 없는 것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는 성자가 바닥이 없는 배를 타고 이곳에 온 이야기일 것이다. 다른 바닥이 없는 표현은 저 텍스트에서 인용 됐을 확률이 높다. 어쩌면 ‘바닥이 없는’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고 ‘그 배를 타고 이 섬에 왔다는 것’이 중요한 거일 수도 있다.


6.

그리고 결석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언급된다. 화자는 ‘우린 롯의 아내와는 달라; 너와 난 특별히 뒤를 돌아볼 이유가 없지. 돌아본다 해도 딱히 볼만한 게 없을 거야.’라고 말한다.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할때 그곳에 둔 재산이 아까워서 뒤를 돌지 말라는 야훼의 명령을 어겨서 소금기둥으로 굳어 버린 사람이다. 아마도 이 두 연인은 서로를 제외하고는 친한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그들은 세상에 둘 밖에 없는 연인이었다.

결석은 미련과 같다. 내보내야 하는 것이고, 내보내는데에는 고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그것은  ‘꿈속에서 그건 롯의 아내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곤 ‘어깨 위로 머리를 돌려, 운명적인 평온의 공백 안에서 차들이 지나가는 고속도로를 응시’한다. 주인공은 에스더의 죽음에 큰 미련이 남아서 M5 고속도로를 21번이나 달려 사고현장을 방문하고, 그녀를 친 폴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련이 남지 않았다면 그는 이 섬까지 와서 이런 일까진 하지 않았을 것이다.



7.

이거 말고도 언급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내가 놓친 것도 있고 말하기 귀찮아서 말하지 않은 것도 있으며, 뭔지 몰라서 한마디도 못하는 것들도 있다. 갈매기 같은 새에 대해서도 반복적으로 나오고, 숫자 21이 계속 되서 반복된다. 21의 경우에는 매우 흥미롭게 계속 반복되지만 21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전혀 추측할 수가 없어서 애석하게도 공백으로 남기게 되었다.

 교통사고로 에스더가 죽은 만큼 자동차도 계속 나오는데 텍스트로 직접 이야기하는 것 보다는 섬에 놓여있는 자동차 부품이라던지, 사고장소의 환각 같은 것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진다. 자동차 부품들이 놓여져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만든이 가족 중의 한명이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집착적인 느낌을 받기도 한다.

달도 자주 나오지만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8.

성자는 순수한 형태의 고독을 찾기 위해 섬에 도착했다. 섬의 해안은 남들과 경계를 지어 주는 바위로 보호되어 있다. 이 섬에서 우리는 외로워하면서 우리가 우리일 수 있게 해준다. 누군가가 동경하여 섬에 찾아 올 수 있지만 고독에 반가운 존재는 될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신에게 버림 받은 그들은 바위에 붙은 따개비와 같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누군가를 원하면 바위에 하얀 선을 그어 밖으로 신호를 보낸다.

섬은 마음이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못할 사람을 마음에 새기며 그 사람을 추모하고, 신호를 보내어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외로울 것이다. 그도, 에스더도, 우리도.


9.

게임으로서 디어 에스더는 논란이 많을 것이다.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게 거의 없다.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움직이는 것 밖에 안 된다. 그 움직이는 것도 거의 일자형 진행이다. 게임의 서사에 반항하여 돌발 행동을 해봤자 우리가 겪게 되는 일은 ‘돌아와’라는 말을 듣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 오는 것 뿐이다.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은 스탠리 페러블에서 얘기하듯이 플레이를 포기하는 것 밖에 존재 하지 않는다. 이 게임을 잘 하는 방법은 천천히 둘러보면서 대사와 배경을 꼼꼼히 살피는 것 밖에 없다.

걷고 보는 것 밖에 할 수 없다면 플레이어는 자신이 있는 ‘공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맨 처음에 디어 에스더에서 공간은 나레이션을 위한 BGM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하긴 하지만 없어도 구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게임을 본격적으로 하고 난 이후에 섬에 대해서 알아가니 내가 조금 틀렸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섬은 화자의 마음을 형상화 한 것이었다. 그 표현이 은유적이고 난해했기 때문에 알아채기가 힘들었을 뿐이었다. 물론 독백이 대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그 독백도 어찌보면 공간에 묶여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공간을 절대 무시하지는 못한다. 공간은 나레이션에 의미를 부여하고 역으로도 작동하기도 한다. 재밌는 예로는 화자는 어떤 구덩이를 보고는"처음 그 구덩이를 봤을 때, 맹세코 내 뱃속의 결석이 움직이는 걸 느꼈어."라고 말한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게임은 똑같은 장소에 오더라도 다른 대사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 장소에서 나오는 다른 대사를 보자. "이게 폴이 자동차 앞유리로 봤던 모습일까?(생략)" 구덩이는 화자에게 사고 당시를 상기 시키는 무엇이다. 내가 위에서 한 결석의 의미를 떠올리면 화자가 충분히 결석을 느낄만하다. 이런식으로 나레이션은 공간을 규정짓고 규정된 공간은 다시 나레이션에 영향을 미친다.




  1. 도넬리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잘 몰라서 그냥 '그'로 표기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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