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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사일런트 힐즈 P.T.에 대한 잡담




1.

P.T는 게임 그 자체로나 외적으로나 잘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P.T는 2014년 게임스컴에서 특별한 정보 없이 공개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PSN으로 무료로 풀렸습니다. 눈치 좋은 사람이라면 이 게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이 게임은 고의로 숨겼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정보를 꼭꼭 숨겨놨었습니다. 

이 게임은 고의적으로 게임을 난해하게 만들어서 클리어 시간을 (주목을 충분히 끌 만큼)지연시켰고, 사람들이 이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했습니다. 특히 게임의 마지막 루프는 악랄해서 몇 시간 동안 깨지 못하는 사람이 속출했었고, 깨는 방법이 랜덤이다 라는 소문이 들릴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결국 엔딩에서 게임의 정체를 밝히게 되는데 알고 보니 이 게임이 유명 프랜차이즈인 사일런트 힐 시리즈의 신작에 코지마 히데오, 기예르모 델 토로, 노먼 리더스가 참여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앞으로 나올 사일런트 힐즈를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이 게임은 본 게임을 홍보하는 ‘티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당연히 게임이 재미가 있으니 이런 것들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게임 외적으로) 리액션을 강조합니다. 우선 공개 트레일러도 마지막은 리액션으로 끝을 냅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동경게임쇼에서 내보낼 리액션 동영상을 투고 받았습니다. 게임 실황 중에서 인기 많은 영상은 공포게임입니다. 자신이 무서워서 못하는 것을 대신 플레이 해주기도 하고 게임 시연자가 제일 극적으로 리액션을 하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플레이스테이션4는 영상을 녹화해서 유튜브로 손쉽게 업로드 하거나 아니면 곧바로 인터넷으로 스트리밍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특히 P.T는 꼭 직접 플레이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사일런트 힐즈라는 게임을 홍보하면 됩니다. 

P.T.가 놀라운 것은 이러한 것들이 그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충분히 계획된 물건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게임 내적인 부분과 외적인 부분은 따로 놀지 않고 조화롭게 잘 돌아갑니다.


2.

이 게임은 티저입니다. 결국 이 게임만으로는 이야기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추측일 뿐입니다. 정확한 해석은 본편이 나와야 가능합니다. 하지만 사일런트 힐즈는 취소되었으니 이제 추측만 가능합니다. 밑의 글은 쓰잘데기 없어서 그냥 넘기셔도 됩니다.



3.

일반적인 가정을 다룬 공포물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스테레오 타입이긴 하지만 가정에서 아버지가 맡는 역할 중에 하나가 가정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족 구성원 중에서 물리적으로 힘이 제일 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포물에서는 아버지는 힘이 세봤자 귀신에게 무기력하고 아니면 반대로 가족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물리적으로 아버지는 제일 세다는 말은 반대로 아버지가 가족을 해하려고 한다면 가족 구성원 중에서 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게임에 나오는 아버지는 직장에서 해고 당하고 술에 빠져 산 걸로 추측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귀신에 쓰인 걸로 보입니다. 게임에서 언급되는 또 다른 나의 존재와, 남편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내 안의 괴물. 그리고 직접 현장에 있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는 아나운서의 자세한 상황묘사를 보아하니 살인이 남편만의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원흉은 아나운서인 듯싶습니다. 아까도 얘기한 아나운서의 상세한 묘사, 화장실에서 선동하던 목소리, 그리고 그는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돌아올 것을 얘기합니다.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궁금해집니다. 일단 남자입니다. 일단 외모만 봐서는 한 가정의 아버지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는 선택 받았으니 제가 생각하는 장난감의 뜻이 맞다 라면 아나운서가 말한 새로운 장난감은 그가 될 확률이 높을 겁니다. 만약 엔딩에서 나오는 대사가 주인공을 향해 한 말이라면 주인공의 아버지는 살인범이고 주인공은 살인사건의 생존자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라디오에서 아나운서는 10살난 아들을 쐈다고 했지 죽었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게임이 멈출 때 나오는 오류 메세지 중에서 20년전 절대 잊지 못할 그날이 그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노만 리더스의 나이가 좀 많긴 합니다. (제 말대로라면 주인공은 30대 정도 할 텐데 말이죠.)

그리고 게임은 한 가족이 아니라 두 가족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선 첫 번째 라디오 메세지에서 남편은 경찰에게 발견되었을때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고 했지만 다른 라디오 메세지에서는 정원호스에 목을 매단 채로 발견됩니다. 화장실에서 일어난 살인도 첫 번째 라디오에서 언급한 내용과 다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첫 번째 라디오 메세지에서 이와 비슷한 다른 가족 살해가 있다고 언급합니다.


4.

이 게임의 공간은 ㄱ자로 되어있는 복도와 화장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단 코너를 돌기 전의 공간은 변화가 다채롭지는 못합니다. 이 공간의 제일 중요한 목적은 ‘같은 곳’을 돌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소품이 추가되거나 하는 일은 없고 끽해봤자 조명이나 시계 같은 걸로 소극적으로 변주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코너를 돌면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합니다. 대부분의 무서운 일들은 코너를 돌고 나서 일어납니다. 맨 처음 복도에 들어오면 코너 너머로 어떤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공간이 위험하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직접 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소리만으로 짐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위험을 직시해야만 합니다.

화장실도 중요합니다. 폐소공포증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좁고,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곳입니다.

2층 발코니의 존재는 우리가 잘 보지 않는 2층까지 걱정하게 만듭니다. 위에서 떨어지는 유리창,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서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냉장고는 우리가 더 위를 걱정하게 만드는 소품입니다.


5.

P.T.는 디어에스더나 곤홈 같은 류의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비교적 좁은 어떤 공간에서 최소한의 상호작용을 하면서 그 공간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 조그마한 디테일을 신경 쓰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을 둘러싼 공간과 그에 담긴 이야기에 대해 알게 되고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코지마는 인디게임을 크게 의식한 것으로 보이며 유저들을 기만하기 위해서 인디 게임스럽게 조작감을 일부러 구리게 했다는 얘기까지 합니다.


6.

코지마의 시도는 매우 훌륭했고 잘 먹혔습니다. P.T.는 정말 시대에 맞는 홍보를 보여준 게임입니다. 다른 말로 얘기하자면 게임이 발매됐을 당시가 아닌 이후에 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감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게임이 호화 제작진으로 이루어진 사일런트 힐즈의 티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한 방법은 인터넷에 널려있습니다. 심지어 지금은 사일런트 힐즈 개발 취소로 인해 P.T. 자체도 PSN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사일런트 힐즈의 끝은 비록 안 좋게 끝났지만 P.T. 발매를 함께 즐긴 사람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됐을 거라 생각됩니다.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쉽게 됐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