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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게임과 스토리에 대해서 짧게 주절주절

짤방은 최근에 그린 아캄나이트 낙서


둠의 개발자로 유명한 존 카맥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게임에 있어서 스토리는 포르노에 있어서 그것과 같다.” 얼핏 들어보면 맞는 말 같다. 스토리가 없어도 게임의 구조 자체는 성립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컷신을 스킵해도 플레이에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고, 슈퍼헥사곤이나 대다수의 리듬게임처럼 스토리를 배제한 게임이라도 게임자체로써는 성립이 가능하다.

네러티브의 배제는 다른 매체도 가능하다. 음악에도 절대음악이란 것이 있고, 미술 쪽에서도 점, 선, 면 같은 조형적인 요소만으로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가 있었고, 영상 쪽도 네러티브를 배제하고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러면 궁금한 점이 생긴다. 그러면 왜 작품에 네러티브를 넣는 것일까? 포르노 얘기를 했었으니 포르노를 예로 들어보자. 물론 포르노에도 밑도 끝도 없이 섹스나 자위를 하는 것도 있지만 꽤 많은 포르노에 네러티브가 포함되어 있다. 심지어 우리는 외국어라서 알아듣지도 못하거나 네러티브라고는 거의 없는 야동마저도 파일명에 상황을 장황이 설명하는 제목을 붙여서 네러티브를 부여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포르노라면 꼴리면 그만이고 게임이면 재밌으면 그만 아니던가?

다시 게임으로 돌아가자. 지금이야 우리는 영화적인 연출로 빵빵한 AAA급 게임들을 즐기고 있지만 초창기의 게임은 연출은커녕 간단한 대화를 출력하는 것도 힘들었던 시대였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도 메뉴얼에 배경줄거리를 적어준다던가 아니면 제목 그 자체만으로 스토리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라는 제목을 보고 우리는 이 게임이 외계의 침략자를 막는 게임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기술적으로 표현하기 힘들어서 포기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고 하더라도 효과가 미약할 텐데도 우리는 기어코 스토리를 넣는다.


누군가는 단순히 동기부여 때문이라고 말한다. 분명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매체가 여태까지 많이 연구해왔고 제일 잘하는 일 중에 하나가 동기부여이다.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게임은 다른 매체와 달리 수동적인 매체가 아니라서 유저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하니깐 말이다. 아무튼 게임이 이 일을 얼마나 잘 하나면 게이미피케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분야에 수출할 정도이다. 게임은 스토리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동기 부여할 수 있는 수 많은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이미 많은 게임에 적용되어 있다. 이미 나와있는 수많은 모바일, 온라인 게임들만 봐도 스토리는 전혀 모르고 상관도 안 하지만 우리는 수 백시간을 바친다. 그에 반면 수많은 사람들이 스토리가 있는 게임은 보통 한번 깨는 걸로 만족한다. 과연 동기부여만 가지고 이 일에 대해 설명할 수가 있을까?


게임을 게임 그 자체, 어떤 구조를 가진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면 스토리는 당연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적군이 나치이든 23세기의 미래 병사이든 결국 겉치레일 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게임에서 중요한 건 구조적으로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가가 될 것이다. 옛날 그리스인들이 음악에 그러했듯이 게임에도 수학적인 방법을 동원한다면 정말 아름다운 구조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게임을 볼 때 구조적인 완성도만을 보지 않는다. 결국 게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축구에서 어떤 선수가 은퇴 경기에서 엄청나게 화려한 기술로 골을 넣었다고 치자. 사람들은 그 기술 자체에 감동받기보다는 이 선수와 팬들에게 그 골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라디오헤드의 크립이 그 찌질한 가사 없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라스트 오브 어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조엘과 엘리의 캐릭터에 대해서 침을 튀겨가며 얘기하지 게임의 구조가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둔감하다. 보통 우리는 게임을 얘기하면서 이렇게 했다는 것을 주로 얘기하지 게임 구조 그 자체에 대한 말은 별로 없다. 결국 게임 플레이는 테크네의 영역에 든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잘 만들어야 하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오래 살아남으려면 테크네만 가지고는 좀 힘들 수도 있다.


그냥 사물 그 자체보다 의인화한 사물이 더 정감이 가는 것처럼 스토리는 게임이라는 무미건조한 구조를 친숙하게 만들어준다. 히트박스들이 서로 에너지를 투사하는 것보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서로 총을 쏘는게 더 이입하는게 쉬울 것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 네러티브는 우리가 게임에 의미를 부여하기 쉽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에 대해서 더 잘 기억한다. 예를 들어 똑같은 행위일지라도 첫 경험 같은 것은 보통 잘 기억하는 편이다. 의미를 부여받은 게임은 그냥 게임에서 우리에게 '어떤'게임이 된다. 여기에 또 반론을 하자면 친숙함은 이미 기존에 있던 게임 구조를 답습하면서 얻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네러티브를 배제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의미의 획득 같은 경우에는 쉽게 만들어 줄 뿐이지 게임 외적인 요인(ex: 내가 처음 산 게임)이나 네러티브가 아닌 게임 내의 상황(Dayz같은 온라인 게임이나 Garry's MOD 같은 샌드박스 게임들)을 가지고도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게임에서 답을 찾고자 하면 끝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내가 여태 게임 말고 다른 매체를 들먹인 것도 이런 현상이 게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깐 그런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왜 우리는 의미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허무한 것을 싫어하는지. 자기 주변의 공백에 의미를 채워 넣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PS

여기서부터는 게임 외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이고 개인적으로 생각한 게 있긴 하지만 글로 풀어낼 정도로 생각해둔 것은 아니므로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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