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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소마에 대한 잡담






1.

소마(SOMA)는 암네시아 : 더 다크 디센트를 만든 프릭셔널 게임즈에서 제작한 1인칭 호러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소마는 전작에서 본인들이 인디 쪽에서 한동안 유행을 시켰던 게임 구조를 다시 가져왔습니다. 플레이어는 적에게 저항할 수 없고, 적은 플레이어를 쫓아 돌아다닙니다. 플레이어는 적을 숨어다니거나 쫓기면서 주어진 과업을 시행해야 합니다. 여기서 적의 AI를 발전시키고 다양한 자원을 수집하고 이를 관리해야 하는 구조로 만든다면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이 되고, 메커니즘을 단순화시켜서 캐주얼하게 만든다면 아웃라스트 같은 게임이 됩니다. 거기서 더 게임 구조를 단순화시키면 P.T와 같은 게임이 됩니다.

전작인 암네시아는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과 아웃라스트의 중간 정도의 복잡함을 지닌 게임이었습니다. 잠입메커니즘 부분에서는 대부분의 서바이벌 호러 게임과 같이 단순합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괴물을 피해 어둠 속으로 숨을 때 어둠 속에 오래 있으면 멘탈이 버티질 못합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멘탈, 등유 체력 같은 자원들을 관리해야 합니다. 맵도 아웃라스트처럼 일직선이 아니라 어느 정도 오픈된 월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마는 전작보다 더 단순화된 게임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체력회복도 단순화되어 있고 더는 모아야 하는 자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의 AI는 여전히 단순한데 거기서 나아가 아예 숨바꼭질의 비중이 엄청나게 줄어들었습니다.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과 같이 게임구조가 복잡한 게임일수록 구조가 견고해집니다. 게임구조가 견고해진다는 것은 조금 익숙해진 유저가 예측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고 예측 가능한 것은 더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게 됩니다. 이런 복잡한 게임에서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면 게임의 구조는 무시해야 할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를 만든 것을 헛수고로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게임 플레이가 어렵고 호러게임 특성상 주도권이 적에게 있으므로 쫓기듯이 플레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네러티브를 뒷전으로 만들고 게임의 목표에만 집중하게 합니다.[각주:1]


이와 반대로 구조가 단순한 게임들이 있습니다. 이런 게임들은 견고한 룰보다는 스크립트에 많이 의존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예상외의 공정하지 못한 상황들이 연출되기도 하고 플레이어들은 예측할 수 없게 됩니다. (아예 못하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들어맞진 못합니다) 하나 예로 들자면 플레이어는 적과 만났지만 가까스로 따돌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적은 플레이어가 있는 곳으로 오려면 플레이어가 왔던 길로 따라와야 합니다. 하지만 적은 플레이어 뒤에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플레이어 앞에서 나타날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스크립트를 이용해서 적은 플레이어의 앞에 나타납니다. 당연히 플레이어를 깜짝 놀라게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건 공정한 게임은 아닙니다. 아무튼 이런 구조는 플레이어가 예측할 수가 없으므로 이해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공포의 대상이 되도록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긴 장점은 초회차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다 회차를 진행하면 대부분의 일을 예측할 수 있게 되고 공포감이 많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이런 예측 불가능한 구조는 플레이어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물론 이러한 점도 다 회차를 진행하면 줄어듭니다)그리고 플레이어들을 개발자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하기 편합니다. 이런 경우 공포 연출을 하기 편해집니다. 하지만 그만큼 플레이어의 행동은 제약하게 됩니다.[각주:2]


앞서 얘기한 복잡한 모델과 단순한 모델들은 서로 장단점이 있으며 개발자의 의도에 따라서 취사선택을 하게 됩니다. 소마는 네러티브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게임플레이가 네러티브를 압도하지 않도록 게임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았고 대신 스크립트에 많이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그다음 중간중간 스토리가 별로 필요 없는 곳에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적을 배치했습니다. 스토리를 진행하는 구간은 스토리에 집중하기 위해 대체로 외길 구성이고, 적이 등장하는 곳은 적을 피해서 돌아다닐 수 있게 다양한 우회로가 존재하는 맵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적과의 숨바꼭질은 단순하지만, 적들의 종류도 다르고 숨바꼭질 도중에 여러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변주가 조금씩 존재해서 스킨만 바꾼 것 같은 아웃라스트의 숨바꼭질보다는 다양한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결국 깊이는 얇으므로 비슷한 플레이를 하게 됩니다. 거기에 자원이 삭제되었기 때문에 자원을 찾기 위해서 맵을 뒤지기보다는 이곳에 뭐가 있는지 탐사하는 기분으로 맵을 수색할 수 있습니다.

서바이벌호러에서 자주 나오는 요소인 숨바꼭질과 자원관리의 비중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그 빈자리는 퍼즐이 담당하게 됩니다. 퍼즐은 대부분 공포게임과 같이 본격적인 메커니즘을 가진 퍼즐이 아니라 ‘여기를 통과하려면 무엇이 필요한데 그것을 구하려면 어디서 무엇을 가져와야 한다.’ 정도 수준의 혹은 그 퍼즐의 심화 수준 정도의 퍼즐입니다.  어쩌면 너무 무난하게 갈 수도 있었던 퍼즐들을 소마에서는 훌륭하게 소화해냈습니다. 역시나 네러티브의 덕이 큽니다. 캐서린과의 대화를 통해서 플레이어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목표를 제시해줍니다. 다시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을 예로 들자면 처음 플레이어에게 제시된 문제는 어머니를 찾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제노모프가 나타나면서 처음 제시된 목표의식은 사라지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방향성도 없고 수동적인 목표의식이 제일 앞에 오게 됩니다. 가뜩이나 게임은 10시간이 넘는 플레이타임을 뻥튀기하기 위해 하는 일마다 잘 안되게 꼬아버리기 때문에 짜증도 나고 자기 일이 진전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소마에서는 캐서린을 만나면서부터 ARK를 우주로 발사해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를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어떤 기지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상기시켜줍니다. 플레이어는 퍼즐을 깨고 다른 기지에서 다른 기지로 이동할 때마다 자신이 목표에 얼마나 다가갔는지 명확하게 알게 됩니다. 해야 하는 일들도 ‘내가 왜 여기서 이딴 일을 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목표에 맞는 퍼즐들을 던져줍니다. 그리고 퍼즐들도 흥미로운 것들이 많습니다. 주로 컴퓨터를 조작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 퍼즐들이 많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브랜든 완에게 암호를 알아내는 것이었는데 외장 메모리에 파일을 복사해와서 실행하는 것은 실제로 그곳에 있는 컴퓨터를 조작하는 느낌이 듭니다. 브랜든 완이 불완전한 세계를 접하면서 보이는 반응을 보는 것도 재밌고 주제와 연관도 있으므로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거기에다가 브랜든 완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서 퍼즐에 적용하는 것도 퍼즐을 더 재밌게 만들고 스토리를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줍니다.


소마에서는 선택의 순간들이 존재합니다. 다른 게임에서도 선택의 순간들은 존재합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은 캐릭터와 그 주변 환경들을 바꾸어 나갑니다. 몇몇 게임들은 거시적인 변화를 끌어냅니다. 거창한 변화에 걸맞은 중요한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여러 단계의 인과관계를 걸처야 하기 때문에 직접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소마는 거창한 선택보다는 작은 선택을 하게 합니다. 거시적으로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선택들이지만 선택의 결과들은 곧바로 피드백됩니다. 이 선택들로 인해 등장인물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플레이어에게 감정적인 변화를 끌어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선택들도 게임에서 다루는 주제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2.




현실은 더 이상 믿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필립 K 딕


소마가 다루는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 하기 전에 시각에 대해서 통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마의 세계에서 영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과거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장착한 블랙박스에 의해 기록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걸 영적인 무엇인가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어정쩡하게 넘어가지 않고 블랙박스라는 설정과 이를 데이터마이닝 할 수 있다고 직접 대사를 해서 알려주고 넘어갑니다. 이건 사람들이 주인공이 과거를 볼 수 있는 게 영적인 것이 존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못 박아두는 것입니다. 굳이 이걸 얘기하는 이유는 영혼 같은 게 없다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면 게임의 주제가 흐려져 버립니다. 영혼이 존재한다면 어떤 존재가 연속성을 유지한 채로 육체에서 다른 육체로 넘어가는 것이 가능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게임에서는 이러한 가능성을 차단해버립니다.

위의 필립 K 딕을 말을 꺼낸 이유도 이 게임의 유물론적인 관점에 관해서 이야기 하기 위함입니다. 현실은 물질적이고 어떤 사상적 기반이나 영적인 것이 아닌 그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믿지 않든 뭘 하든 간에 사라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마에서 다루고자 한 이야기는 매우 흔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영화, 소설에서 이에 관해서 이야기 했고 무엇보다 이 이야기는 기원전 그리스에서도 떠들 정도로 오래된 떡밥입니다.

플루타르코스가 말한 테세우스의 배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노타우르스를 죽인 후 아테네에 귀환한 테세우스의 배를 아테네인들은 팔레론의 디미트리오스 시대까지 보존했다. 그들은 배의 판자가 썩으면 그 낡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더 튼튼한 새 판자를 그 자리에 박아 넣었던 것이다.

커다란 배에서 겨우 판자 조각 하나를 갈아 끼운다 하더라도 때 이 배가 테세우스가 타고 왔던 '그 배'라는 것은 당연하다. 한번 수리한 배에서 다시 다른 판자를 갈아 끼운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 낡은 판자를 갈아 끼우다 보면 어느 시점에선 테세우스가 있었던 원래의 배의 조각은 단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https://namu.wiki/w/%ED%85%8C%EC%84%B8%EC%9A%B0%EC%8A%A4%EC%9D%98%20%EB%B0%B0

이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는 단순히 배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같은 존재로 인식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의 세포는 죽고 분열되면서 계속 유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시간이 지나면 내 몸의 많은 부분은 예전과 다른 세포로 구성되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옛날의 나와 같은 존재인 걸까요?


만물은 유전한다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한강에 발을 담그고 나중에 다시 그 자리에 발을 담가도 이미 제가 발을 담글 당시의 물은 흘러갔기 때문에 제가 담근 물은 다른 물이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제가 담근 강은 한강이 맞습니다. 만약 정부에서 한강에 대대적인 공사를 해서 물길을 바꿔서 예전과 물길이 달라진다 해도 아마도 그 강은 그대로 한강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이 바뀐다고 했지만, 이는 모든 게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했던 말입니다.

다시 테세우스의 배로 돌아가면 우리는 테세우스의 배의 부품이 조금씩 바뀌었다고 그것을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많은 부분이 다르지만 어쨌든 간에 나입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연속성입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구성된 세포도 다르고 사상도 다르지만, 전부터 이어져 왔기 때문에 저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소마에서 마크 사랑은 이 점에 주목합니다. 자기가 자신일 수 있는 것은 연속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멸망해버리고 암울한 이곳을 벗어나서 ARK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랑은 자신과 ARK로 복제된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ARK로 복제된 순간에 자신은 이곳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죠. 하지만 세포가 죽고 다시 생기면서 대체 되는 것처럼 자신이 복사된 이후에 자신이 죽으면 ‘나’는 ARK에 복사된 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마크 사랑은 그 때문에 ARK에 복사된 직후 자살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을 믿는 사람들도 사랑과 같이 자살을 합니다.


우리는 보통 컴퓨터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나눕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와는 달리 물리적 존재가 아닌 것으로 표현합니다만 결국 소프트웨어도 0과 1을 가지고 기록된 물리적 기록입니다. 우리의 정신이 뇌의 물리적인 활동인 것처럼 소마에서 스캔 된 정신들도 결국 물리적인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곳으로 복사하는 행위는 마치 나에 대한 설계도를 가지고 다른 곳에서 새로운 나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복사된 나는 전혀 나와 다른 존재입니다. 하지만 복사된 개체는 물리적으로는 연속성이 전혀 없지만, 사고에서만큼은 예전과 연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마에서 등장하는 칼 샘큰과 같은 모킹버드들은 복사된 자신을 예전과 같은 사람이라고 인식합니다. 중간에 퍼즐에서 등장하는 브래든 완과 대화를 시도할 때 스캔 직후의 환경과 다른 환경에서 불러오면 자신이 있던 곳과 괴리가 생겨 자신의 연속성에 의심을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주인공인 사이먼 자렛도 갑자기 바뀐 환경에 당황하지만, 자신이 뇌스캔을 받던 그 사이먼 자렛이라고 확신합니다. 당연히 이야기는 이러한 확신을 깨부숩니다. 우선 물리적으로 원래 자신의 성별이 아닌 여자의 몸에 이식되었다는 설정을 넣어서 자신의 몸을 타자화시킵니다. 그리고 사이먼이 다른 몸으로 복사되지만 예전에 있던 몸이 살아 있는 광경을 보면서 복사된 개체와 나는 다르다고 선을 긋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중간에 이미 확고한 답이 내려져 있으므로 주인공은 예정된 파국을 향해 갑니다.


주인공의 적은 WAU라는 AI입니다. 전작인 암네시아에서 등장하는 섀도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WAU는 파토스-2의 기지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혜성이 충돌하고 나서 인간이 예정된 멸망을 피할 수 없게 되자, WAU는 인간을 보호해야 하는 목표를 다르게 수행합니다. 인간의 뇌를 스캔해서 로봇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캐서린 춘은 이에 영감을 받아 ARK 프로젝트를 실행합니다. 하지만 두 방법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로봇들은 사람인 걸까요? ARK의 생존자들은 ARK 안에서 인간과 같은 삶을 유지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ARK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들이 ARK 밖을 무시하더라도 현실은 그대로 존재할 것이고, ARK 밖 현실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도 못하고 아무런 발전조차 없습니다. 적어도 WAU의 방법은 현실에 영향을 주고 더 개선될 여지가 있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인간의 유지를 위해서 노력하는 가운데 정작 이야기에 등장하는 유일한 인간인 사라 린드월은 자신이 마지막 사람인 것을 알면서도 구차하게 생명을 연장하지 않고 싶어 하고 주인공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합니다. 과연 이렇게까지 우리가 만들어 온 것들을 유지해야 하는 걸까요?

이것만으로도 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만 소마에서는 캐서린과 사이먼을 중심으로 연속성에 관한 이야기를 메인 주제로 삼고 있으므로 WAU의 이야기는 겉돌게 됩니다. 플레이어를 막는 유일한 적임에도 주제와 겉돌게 되니 그저 발목을 잡는 장애물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소마는 조금 진부하긴 하지만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었고, 게임플레이도 이에 맞추어서 이야기와 관계가 깊은 퍼즐과 선택들을 만들고 네러티브에 집중할 수 있게 완급조절을 하였습니다. 공포 장르인데도 점프스케어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묵묵히 한다는 점도 인상 깊습니다. 비록 전작인 암네시아 더 다크 디센트에서 게임구조는 단순화되었지만 더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P.S

엔딩 크레딧 이후에 나오는 ARK 안의 가상세계 디자인이 너무 구려서 조금 웃겼습니다. 이곳은 인간의 유일한 희망이자 유토피아 같은 곳인데 말이죠. 프릭셔널 게임즈의 인도어 디자인은 꽤 괜찮은 것 같지만 아웃도어 디자인은 별로인 것 같습니다. 암네시아 머신 포 피그스를 만든 차이니즈 룸이 소마보다 더 구식 엔진인 소스엔진으로 만든 디어 에스더가 더 좋아보일 지경입니다.



  1. 보통 이러한 스트레스 상황이면 최대한 빨리 클리어를 하려고 하지만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 같은 경우에는 세이브에 제약을 걸어 두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플레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클리어를 위해선 느린 템포로 진행해야 합니다 [본문으로]
  2. 단순한 구조의 게임 중에서는 슬렌더맨과 같이 스크립트 대신에 랜덤에 의존하는 때도 존재합니다. 마치 요즘 인디 게임들이 치밀한 레벨디자인 대신 로그라이크를 이용하는 것처럼 말이죠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