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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레플리카에 대한 잡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레플리카는 다른 사람의 휴대폰을 조작해서 휴대폰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내는 게임입니다. UI와 조작은 실제 휴대폰과 유사하게 디자인되었습니다. 터치 중심의 인터페이스를 마우스로 플레이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불편한 감이 있습니다. 게임 안에 등장하는 가상의 기기를 조작하는 게임은 이미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게임 중에서도 슈퍼핫은 DOS처럼 텍스트로 이루어진 가상의 컴퓨터 OS를 조작해서 스토리를 진행합니다. 레플리카와 비슷한 예로는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가 있는데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어느 우주선의 터미널을 조작해서 과거에 일어난 일을 알아내고자 합니다. 여태까지 말한 게임들은 PC게임이기 때문에 이에 적합한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커서 기반의 메뉴를 사용한다든가 직접 키보드로 직접 명령어를 쳐가면서 플레이해야 합니다. 특히 명령어 같은 경우에는 익숙해지는데 어렵고 쓰기에 번거로운 조작체계이지만 굳이 사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부분 게임에서 플레이어 캐릭터(이하 PC)가 행하는 동작과 플레이어가 하는 동작에는 괴리가 있습니다. FPS에서의 PC는 걷고 있지만 실제로 플레이어가 하는 행동은 마우스로 움직일 방향을 가리키고 키보드에서 W를 누르는 것입니다. RTS 같은 게임에서는 괴리가 더 심해집니다. 그저 A를 누르고 왼쪽 마우스로 원하는 지점을 눌렀을 뿐인데 캐릭터들은 알아서 길을 찾아가고 알아서 전투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플레이어가 하는 동작과 PC가 하는 동작이 일치할수록 PC와 플레이어가 일체화되는 느낌을 주게 합니다. 그렇기에 체감이 주가 되는 VR기기들은 모션컨트롤러를 지원합니다. 그렇기에 아까 얘기했던 명령어 조작은 번거롭지만,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 안에 있는 컴퓨터를 조작하는 느낌이 들고 PC간의 괴리를 줄여서 마치 플레이어가 PC가 된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레플리카는 PC게임이지만 휴대폰을 고집합니다. 왜 하필 휴대폰일까요? PC에서 조작하기 더 불편한데도 말이죠. , 게임 외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각주:1], 내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스토리상으로 PC는 갇혀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가지고 다니면서 플레이할 수 있는 모바일기기에서 플레이하면 오히려 PC와 플레이어 간의 괴리감이 생깁니다.[각주:2] 차라리 엉덩이 붙여가면서 할 수 있는 PC(퍼스널 컴퓨터입니다...)플랫폼이 더 괴리감이 적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휴대폰은 현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기 중에서 제일 사적인 기기이기 때문입니다.

 

2.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캐릭터 리플리는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는 정보부 요원의 강요로 디키라는 사람의 휴대폰을 뒤지게 됩니다. 하지만 디키의 사소한 행적들을 가지고 반사회적인 인물로 몰아가는 것을 보면서 부조리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인공들은 비록 영어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 개발자가 개발했기 때문에 한국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최근 국가가 국민을 감시할 수 있는 법안인 테방법이 통과된 한국 정치 상황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예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자국민을 상대로 한 납치, 감금 그리고 고문 등을 행하는 모습은 지금의 국정원보다는 옛 안기부다운 모습입니다. 엔딩11의 즉결심판도 옛날이면 모를까 지금의 한국과는 맞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나마 소미히메기자에게 구출된 이후에 국가가 법을 최대한 활용해서 소송으로 국민을 괴롭히는 엔딩3 5가 현재 한국에 가까운 모습일 것입니다.

엔딩들은 나의 의도가 반영된다기보다 어쩌다가 걸리는 우연적인 사건들을 맞닥뜨리는 것 같습니다.[각주:3] 이야기의 주도권은 리플리에게 없습니다. 리플리는 관찰자에서 머문 채로 정보원이 하는 얘기나 디키가 하는 얘기를 거의 일방적으로 듣습니다. 반항하고자 해도 리플리는 이야기 내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엔딩6의 혁명 같은 부분이 그나마 무언가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버튼이 어떤 버튼인지 모른 채 선택권을 주기 때문에 결국 이야기에 끌려가는 것이 됩니다. 엔딩10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 두 엔딩 모두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지만, 플레이어는 그럴 의도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냥 어쩌다가 암호를 푼 것일 뿐입니다. 휴대폰을 탈옥해서 정부탑재앱을 지운다든가 비인가 앱을 받아서 반항적인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어쩌다가 암호를 푸는 행위로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어떤 일인지도 잘 모른 채 말이죠.

 

3.

우리는 휴대폰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게임도 할 수도 있고 남들과 대화할 수도 있고, 사진도 찍고, 음식도 배달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휴대폰으로 책을 사서 볼 수도 있습니다. 휴대폰이 할 수 있는 게 많아질수록 휴대폰은 점점 사적인 기기가 됩니다. 거기에 더해서 인터넷은 나의 행동을 수집합니다. 내가 어떤 영화를 봤고 별점은 얼마나 줬는지, 내가 산 책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좋아할 만한 책을 추천해줍니다. 내가 어떤 검색어를 통해서 어떤 사이트에 들어왔고 얼마나 체류했는지도 수집합니다. 휴대폰이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된 만큼 인터넷도 그만큼 다양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 자료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우리는 읽어보지도 않은 약관에 동의함으로 이 모든 정보를 기업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앞으로 이 정보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정보들은 항상 윤리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까요? 기업들은 우리를 하나의 사람으로 볼 수 있을까요? 우리를 그저 나를 이루는 여러 정보로 이루어진 레플리카로 보진 않을까요?

제목인 레플리카는 숨겨져 있고 제일 뜬금없는 엔딩에서 비로소 언급됩니다. 하지만 이야기 내내 국가주의를 비판하다가 숨겨진 엔딩에서사실 진짜 적은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야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언급되는 것이 너무 부자연스럽습니다. 뭐 숨겨진 요소니까 그럴 수도 있지 싶긴 한데 하필이면 제목인레플리카가 거기서 언급이 돼버리니 이야기의 통일성을 해치더라도 언급을 하고 넘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4.

크레딧에서 소설인리틀브라더’(저는 읽어보진 않았습니다.) 2차 창작이라고 밝혔는데 이 게임은 온갖 인용과 패러디가 난무합니다. 주인공의 이름도 리플리 시리즈의 주인공인 리플리에서 따왔고 1984, 브이 포 벤데타, 매트릭스 같은 작품들의 오마주나 패러디도 보입니다.

게임 패러디도 있는데 루리웹에서 많이 쓰이는 이야기에 상관없이 무작정 때려 박고 이건 패러디니까 웃긴 거야 식의 패러디가 있어서 저한텐 좀 그랬습니다.[각주:4]

짧은 이야기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이것저것을 오마주하고 인용하다 보니 이야기의 통일성이 없습니다. 정부가 하는 짓을 보더라도 어떨 때는 우리나라 같기도 하다가 어떨 때는 1984년에 나오는 오세아니아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창성이 부족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이야기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게 과연 이 작품의 오리지날일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함부로 좋아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있었습니다.

불만이 좀 있긴 하지만 레플리카는 꽤 할만한 게임입니다. 볼륨이 좀 적긴 하지만 3300원이라는 값을 생각하면 적당한 가격이기도 합니다.




  1.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같은 모바일 스토어들보다는 요즘 많이 지옥 같아졌다지만 그래도 아직 모바일보다 나은 스팀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본문으로]
  2. 이건 역으로 PC플랫폼이기 때문에 이런 설정을 넣었을 수도 있겠네요. [본문으로]
  3. 그나마 이런 식으로 얻어걸리는 식의 엔딩은 체크포인트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본문으로]
  4. ‘이건 우화(패러블)가 아니야’라니요. 못 알아 들을까 봐 너무 자세한 설명까지 하하… [본문으로]